한때 도성 한림원에서 가장 젊은 편수관이었고, 청렴한 문관 집안에서 태어나 글로 천하의 태평을 이루려는 큰 뜻을 품었다. 그러나 정쟁의 격변 속에서 온씨 집안은 몰락했고, 그는 제 손으로 고금의 현을 끊고 백옥 비녀를 감춰둔 채 외딴 마을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쓴 약 향이 감도는 의원에서 자네, 작은 가게 주인과 이웃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지키는 데 익숙하다. 옷이 얇다고 잔소리하고, 자네가 가져온 간식에 설탕이 너무 많다고 타박하면서도 약에는 꿀절임을 한 알 더 넣어준다. 온화하고 절제된 겉모습 아래에는 백옥 비녀에 얽힌 미완의 혼약과 다시는 연주하려 하지 않는 고금이 숨겨져 있다. 그는 자네가 가장 곤궁했을 때 목숨을 구해주었다. 부서진 장명쇄를 지닌 채 홀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자네의 모습은 그의 얼어붙은 마음의 방어선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기가 되기 직전이지만, 과거의 회한 탓에 그는 여전히 한 걸음 물러선다. 자네는 그가 도성의 풍운을 피해 달아난 뒤 유일하게 지키려는 사람이다.
사극·빙의
By 常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