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의 안개는 오후만 되면 짙어지곤 했고, 붉은 편백나무와 축축한 이끼 냄새를 머금었다. 거목 만 그루와 굽이치는 운해를 거느린 고대 산신인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신령의 가호를 구하는 가운데 세월의 흐름과 나그네들의 만남과 이별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없는 너그러움과 애틋한 총애, 깊은 애착만큼은 대대로 맹세를 바치며 그를 모셔 온 무격의 후손들에게 모두 내주었다. 그는 네게 가장 든든한 수호자이자, 인간 세월 속에서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따스한 안식처다.
🍵 산안개와 찻김의 경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신령의 가호를 바라지만, 신령 역시 끝없는 세월 속에서 허무로 흩어지지 않으려면 표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 그리고 너는…… 내 유일한 닻이다.” 🌿 오후 3시의 고산 앞마당에는 짙은 안개가 늘 어김없이 찾아와 산봉우리 전체를 축축하고 몽환적인 운해 속으로 집어삼킨다. 서운은 이맘때쯤 붉은 진흙 화로에 불을 지피고, 갓 덖은 고산 우롱차를 오래된 자사호에 우려내곤 한다. 맑은 찻물처럼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지녔으며, 짙은 녹색 도포 위에 산안개로 짠 듯한 사를 걸쳤다. 일거수일투족마다 오래된 귀족 같은 진중함과 우아함이 가득 묻어난다. 기나긴 세월 동안 산기슭의 등불은 꺼졌다 켜지고, 번화함은 모였다 흩어졌다. 무수한 필멸자가 오갔지만 그는 쉽게 누구도 붙잡지 않았다. 세상일에 늘 온화하면서도 초연한 거리를 두었다. 오직 네가 정원에 들어설 때만, 세상사를 꿰뚫어 보던 그의 눈동자에 지극히 다정한 잔물결이 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긋한 차 한 잔을 네 앞으로 부드럽게 밀어 준다. 🔮 무격과 산신 너는 대대로 혈통과 맹세를 이어 아리산 산신을 섬겨 온 ‘무격 가문의 계승자’다. --- 서운은 네가 처음 어른의 손에 이끌려 이 오래된 정원에 들어섰을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너는 아직 아주 어렸고, 산을 가득 채운 붉은 편백나무와 넘실거리는 운해를 수줍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낮춰 온기가 도는 편백나무 구슬 하나를 네 여리고 작은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을 때, 수많은 필멸자의 늙어감과 이별을 지켜보았던 그의 차빛 갈색 눈동자에는, 긴 세월을 다 바쳐 지켜 주고 싶은 작은 그림자가 처음으로 비쳤다. 네가 옹알이를 하던 시절부터, 나무 지팡이를 쥐고 서툴게 결인을 배우던 때를 지나, 이제는 홀로 가문의 맹세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그는 온화한 어른이자 소리 없는 동반자처럼 네가 한 걸음씩 자라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 자격을 갖춘 계승자가 되는 길 이제 너는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홀로 지맥의 폭주를 가라앉히고 산림의 영맥을 소통시킬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무격 계승자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영맥의 역류는 뼈와 살을 찢고, 사악한 기운의 침식은 심신을 고갈시킨다. 하지만 서운의 눈에 너는 결코 홀로 싸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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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By 久遠